2015년 2월 15일 일요일

서평

최근 읽은 세 권의 책 『21세기 자본』『빚으로 지은 집』『저주의 몫』에 대해 짧게 글을 쓰려 한다. 너무나 논쟁적인 책이 껴있는 관계로, 개인적인 느낌 위주로 정리한다.

1. Smaller than Marx 『21세기 자본』

먼저 『21세기 자본』(Capital In 21 century: 토마 피케티)에 관한 이야기다.
금융위기 이후의 저성장, 그에 이어지는 불평등의 심화라는 글로벌한 경제환경에서 토마 피케티가 던지는 아이디어는 명쾌하다. r>g, 즉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f(자본,노동))성장률보다 높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더 부유해지고 노동자들은 더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r>g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그가 생각하는 이유는 인구의 성장과 혁신이 모두 둔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쾌한 아이디어를 15년간 모은 방대한 데이터로 뒷받침하는 만큼 분명 경제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책이다. 그러나 로렌스 서머스의 서평처럼, 그는 "완벽한 순간에" 불평등을 다뤘다. 탐욕적인 자본가 집단으로 각인되어 있는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가 휘몰아친 이후, 글로벌 저성장이 대부분의 경제주체를 짓누르고 있는 2010년대에 출판된 이 책의 이슈성은 다소 과장된 듯한 느낌이 든다.

이코노미스트 지는 이 책에 대해 "Bigger than Marx" 라고 극찬했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Capital이라는 책 제목이나, 책 내용에서 마르크스의 연구들을 언급한 저자의 의도적인 부분 때문에 저런 평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이해한 마르크스의 문제인식은 생산수단의 박탈이었고, 그의 대안은 생산수단의 공동소유였다. 이는 분명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매력적인 대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실험적 체제를 가진 국가들이 건설되었고, 비록 실패했지만 꽤나 오래 존속했다. About what? what to be? How to? 가 모두 갖춰진 잘 짜여진 이론이었다.

피케티의 문제의식은 '상대적으로 높은 자본의 수익률 때문에 생기는 불평등의 심화' 였고, 자연스럽게 To be는 불평등의 완화이다. 그가 제시한 how?는 자본세의 부과를 통해 자본의 상대적 수익률을 낮추자는 것이다. 그가 포괄한 '자본'의 구성체들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비판 등 여러가지 통계학적 비판은 차치하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렇다.

현재 불평등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은 궁극적으로 '불평등의 완화'를 꿈꾸는가, 아니면 '내가 저 자본가가 되고 싶다'를 꿈꾸는가? 우리는 '위에 있는 사람들이 미끄럼틀을 타고 주르르 내려오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사다리'를 원하는가? 최소한 나는,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후자를 원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불만을 가지고 있는 계층에게 피케티의 대안은 마르크스의 그것보다 훨씬 덜 매력적이다. 물론 피케티 스스로가 본인은 경제학자라기보다는 사회과학자로 정의하고 있는 만큼, 그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더 힘을 썼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너무나도 논쟁적인 결론파트를 두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우스울 수도 있지만, 아직은 Smaller than Marx다.


2. 어떤 자본이 문제가 되는가? 『빚으로 지은 집』

『21세기 자본』은 방대한 자료에 걸맞게 거대담론을 다루고 있는 만큼, 자본 전체를 뭉뚱그려 이슈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반면『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은 좀더 쪼개서 현실성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다다음 단락부터 이야기하겠다. 책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저자들의 문제의식은 과도한 가계부채와 이로 인한 과도한 Boom-bust Cycle의 진폭이다. 지나치게 쉽게 돈을 빌려주는 사회분위기로 흐르게 되어 가계부채가 과다해지면 버블이 형성되고, 언젠가 뻥 터진다는 것이다.

House of cards를 패러디한 듯한 제목을 가진 이 책도 최신 통계를 이용해 문제에 접근한다. 저자들은 대공황과 대침체 (1929, 2008) 직전에 모두 과도한 신용승수와 이로 인해 가계부채가 지나치게 높은 수준까지 올라갔다는 점, 그리고 Bust가 일어나기 전에 Durable Goods에 대한 소비가 크게 감소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내구재의 특성상 가격이 비싸고, 레버리지를 일으켜서 살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들이 유의미한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쉽게 할 수 있는 '빚은 위험해' 에서 한 단계 나아가 내구재 소비에 관한 통계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게 이 책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매우 탁월하다. 먼저, 사람들이 내구재를 소비할 때 레버리지를 일으킨다면, 그 사람들을 채무자, 레버리지를 제공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채권자 혹은 자본가로 분류한다. 그리고 레버리지로 인해 경제의 Volatility가 커지고, Bust할 때 지나치게 힘든 시기를 겪어야하므로 과도한 레버리지는 좋지 않다는, 받아들이기 쉬운 명제를 바탕으로 한다. 지양해야할 과도한 레버리지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 책의 결론은 레버리지를 쓴 채무자와 레버리지를 제공한 자본가 모두에게 Leveraging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논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레버리징에 대한 주된 비판은 채무자 측에 집중된다. "왜 소득수준에 맞지 않는 무리한 소비를 했는가?" 라는 식의 비판을 한 번쯤은 접해봤을 것이다. 비판 뿐만 아니라 책임소재도 모두 채무자가 지고 있다. 20%의 자본과 80%의 레버리징을 통해 집을 샀는데, 집값이 20%빠지면 채무자의 자산은 0이 되고 채권자의 자본은 온전히 보존된다.

그러나 채무자들이 강제적으로 Deleverage 되는 과정에서, 채권자들 역시 고용 혹은 임금의 감소 -> 소비 감소 -> 성장률 둔화라는 고리를 통해 일정부분 경제적 어려움을 입게 된다. (책에서는 'Levered Loss'라는 핵심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즉, 채권자들 역시 과도한 레버리지에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공동의 피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책의 뒷면에 써있는 "우리는 한 배에 타고 있다" 라는 한 문장이 사실은 이 책의 핵심이다.

『21세기 자본』에서의 노동자와 대척점에 있는 자본가가 아닌, 레버리지를 제공한 자본가로 접근하는 순간 좀더 명확한 논의가 가능해진다. 레버리징에 일조했음에도 책임은 지지않는 '무책임한 자본'이 문제의 대상이 된다. 무책임한 자본은,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고정된 수익률을 원하는 Fixed Income을 뜻하고, 책임지는 자본은 손익을 공유하는 주식형태의 자본이다. 저자는 채권형 자본이 줄어들고 주식형 자본이 늘어나는 것이 바람직하고, 현실적으로 손익공유형 모기지가 더 늘어나야한다고 대안을 제시한다. 자본세를 거두어 국가의 실패가 발생하지 않는, 극히 미미한 확률에 기대는 것보다는, 책임지는 자본이 증가해야한다는 논리가 나에게는 더 편안하다.

3. 프랑스 저자들?

전혀 모르는 분야이니 짧게 느낌만 쓰자면, 피케티의 책과『저주의 몫』(조르지 바타이유)에서 두 가지 공통적인 느낌을 받았다. 첫 째는 '전쟁'의 소모성에 대해 꽤 중요하게 언급한 것이다. 피케티는 불평등이 줄어들었던 시기로로, 바타이유는 넘치는 잉여의 파괴적인 소모방식으로 언급했고, 결국 사회가 이런식으로 가다간 또 전쟁이 일어난다는 트라우마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한발짝 떨어져 승자가 된 미국인들의 책에서는 크게 강조되지 않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프랑스와 미국은 뇌구조 자체가 다르다.

두 번째는 분배와 평등, 소비에 대한 일관된 프랑스식 철학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타이유는 차별없는 풍요사회를 꿈꾸며,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증여'지만 현대사회는 증여를 할 만큼 지혜롭지 않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미국의 마샬플랜을 유럽에 대한 '증여'로 해석하며 긍정적으로 보았다는 점은 특이하다. 피케티의 자본세도 궁극적으론 그런 방향성을 꿈꾸는 게 아닐까. 기회가 되면 보들레야르의 소비에 대해서도 공부해보면 좋겠다.


논외로... 피케티는 대중에게 쉽게 읽히게 하기 위해 문학을 많이 인용했는데, 책을 지루하게 하는 요소가 된거 같다. 피케티의 문체도 쉽게 읽히지 않는 문체였다.

책과 함께 피케티가 한국에서 강연한 DVD가 왔는데, 강연후 대학생의 첫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피케티 교수님은 젊었을 때 힘든 점이 뭐였는지, 어떻게 극복하셨는지?"..힐링 불쉿은 이제 제발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다행히 피케티는 원하던 답을 주지 않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돈 걱정 없이 잘 살았습니다.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 2월 1일 일요일

지주사 투자에 대해

주식시장이 제자리에 머문지 7년째가 되었다. (나라의 경제력과 위상은 제자리도 유지하지 못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커지지 않는 파이를 어떻게 나눠먹어볼까 하는 순환매가 이루어진다. 이에 주기적으로 투자Theme을 가지고 특정 주식들을 올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성장주에 대한 고밸류에이션은 지속적인 현상이고, 흔히 말하는 가치투자의 트렌드는 최근 몇년간 자산주 -> 배당주 -> 지주사 로 옮겨가는 듯 하다.

지배구조, 즉 승계이슈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부각되는 독특한 현상이다. 유례없이 급격하고 빠른 성장으로 인해 축적된, 그리고 다음 세대에 넘겨줘야할 부가 특정 세대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자산가 입장에서도, 국가 입장에서도 상속에 대한 정책이 골머리다. 최고상속세율이 50%로 세계 최고 수준인데, 미국이 35-40%인 걸 비롯해 OECD 평균이 25%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래퍼곡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50%를 고분고분낼 사람이 없다는 건 상식이고, 실제로도 상속을 적법하게 하는 기업인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세율에 비해 턱없이 덜 걷히는 편이고, 여전히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적당히 내고 넘어가자, 보다는 어떻게든 아예 안 내겠다는 쪽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70%를 제시하는 피케티는 지나친 이상주의자다.)

승계를 하는 데에는 역사적으로 여러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법적인 헛점을 이용한 CB발행,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분할합병을 통한 자산헐값 인수 등이 대표적이다. 한발씩 늦긴 했지만 이에 대한 대책으로 각종 법안들이 나왔고 이제는 합법적인 승계방식이 몇가지 남지 않았다. 정부에서 원하는 방식이 바로 순환출자를 제거하고 지주사-자회사 방식으로 그룹 지배구조를 바꾸라는 것이다. 깔끔한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기업의 속사정을 더 쉽게 들여다보고 세금을 매기기 쉽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골머리를 앓던 승계 문제에 있어 한 쪽 구멍을 터준 모양새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한 회사를 지주사-사업회사로 쪼개고 지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사업회사의 가치를 올린 후 지분을 스왑한다. 그럼 단순히 회사를 쪼갠 효과로 대주주는 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거의 2배 혹은 그 이상으로 올릴 수 있다. (지주사 전환은 다소 복잡하므로 그 과정은 이 글에서 서술하지 않겠다.) 중요한 부분은 "사업회사의 가치를 올리고", 정확히는 "올리고"라는 파트이다. 올린다의 주체는 누구일까? 바로 대주주다. 한정된 기업의 이익을 가지고 조물락조물락 이 회사에 붙였다 저 회사에 붙였다 하면서 기업의 가치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주체이다. 바로 이 포인트가 최근에 유행하는 지배구조 테마이다. 한정된 이익을 어떤 회사에 붙여줄지에 대한 관심이다. 말은 지배구조이지만 본질은 이익Growth에 대한 목마름이며, 좀더 큰 조각으로 (대주주가) 잘라줄 파이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식시장의 측면에서는 정말 웃지 못 할 이야기들이 나온다. '지금 대주주는 승계 전까지는 이 회사 주가를 띄울 의지가 없어' 아니 대체 전세계에서 어떤 기업인이 자신의 회사가 잘 되지 않기를 의도할까? 심지어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JY승계 전에는 이익을 많이 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대세를 이룰 정도로 한국 주식시장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독특하고 슬픈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유명한 투자자들의 대응방식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결과적으로 재벌들의 배를 불려주는 게임에 참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VIP 최준철 대표의 칼럼으로 대체한다. 두번째는 적극적으로 지배구조의 변화에 주주로서 목소리 내겠다는 것이다. 2006년 출시되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장하성펀드, 이원일 前 알리안츠 대표의 지배구조 개선펀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건희씨가 7%의 전자 지분으로 삼성그룹을 어쩌구..하는 모든 이슈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움직임이다. 재벌구조에서 개인주주들의 주주권은 0에 수렴하고 있고, 이는 정상적인 주식회사의 의결구조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지막 가장 안 좋은 케이스는 이익Growth가 나니 그 이윤을 향유하겠다는 쪽이다. 펀드는 돈만 벌어다주면 된다는, 어쩌면 원초적 목적에 부합하지만 한편으론 철학이나 문제의식이 없는 부류이다. 아마 대다수의 주식시장 참여자가 이에 해당할 것으로 판단되고, 제일모직과 글로비스와 SK C&C 주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좋은 말로 포장하려고 하는 자들의 항변은 주로 이렇다. "기업의 주인이 되는 마음으로 주식을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주주와 한 배를 타는 것이 유리하지 않겠는가" "지주사의 주식을 가지면 그 그룹 전체를 사는 것과 같은 효과다. 얼마나 저평가되어 있는가"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대주주 7%의 의결권이 100에 근접하고, 소수주주들의 의결권은 0에 수렴하는 구조이다. 지주사 주식을 개인 혹은 펀드가 혹여 1%이상 가져본들 그 지분의 의결권은 그룹의 의사결정에 털끝만큼도 영향을 미치지 못 한다. 지주사 주식을 사면서 의결권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매우 비겁하다. 차라리 솔직하게 주가가 오를 것 같아서 샀다고 하면 자본시장의 제1원칙인 수익성의 관점에서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지주사테마에 편승하여 수익을 내보겠다는 마인드를 부끄러워 하면서 억지변명을 하는 투자자들은 철학도 원칙도 없는 투자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15년 1월 15일 목요일

재시작

연말연초 한달 간 퍼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관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애초에 게으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기적으로 이렇게 쉬고 다시 motivation을 찾는 작업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보단 좀더 놀았지만 이제 마음을 다잡고 재시작.

1) 데니스 홍
 최근에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교수의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대가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머리를 탁 때리는 듯한 충격을 줄 만큼 그는 대단한 강연자였다. (이미 TED에서도 두 차례 했었고, 찾아보니 컨퍼런스 강연이나 인터뷰 등은 꽤 많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그의 열정과 삶의 태도였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이 갖추고 있는 덕목이긴 하지만, 그는 훌륭한 강연자로서 자신의 열정과 긍정을 청중들에게 잘 전달해줬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가 만든 기술이 도움이 된다는 생각하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고 즐거운 일이다. 인류에 대해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어서 정말 뿌듯하다"고 말하는 그는 정말 행복해보였다. (실제로 TED에 나와있는 그의 Biography summary에는 he has pioneered several breakthroughs in robot design and engineering 라고 나와있다. Breakthrough는 언제나 중요하다)

직업을 가지면서 사회적 기여에 대해 이미 많이 고민했고 앞으로도 고민해야겠지만, 이미 소결론은 부정적인 쪽으로 나있다. 이에 대해 전혀 부끄럽거나 하지 않지만, 여전히 "인류에 대한 기여"를 논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동경할 수 밖에 없다. 이 와중에, 강연 후 나오는 길에 던진 증권사 직원의 한 마디가 잊혀지질 않는다. "참 좋은 강연인데..주식 종목 아이디어가 없어서 좀 그랬죠?" 한심하다. 저런 분을 모셔놓고 종목을 묻는 건 "오만"이라고 대꾸했다. (그는 "투자자"들을 위한 강연이라고 해서 특별히 구글이 현재 로봇회사들을 많이 M&A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감히 "인류"라는 단어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그가 미국에 살기 때문이 아닐까. 나쁘게 보면 미국 영화들에 역력히 묻어나는 "인류를 구원할 영웅주의"겠지만, 미국이라는 인프라는 인류를 언급할 만큼 충분히 훌륭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참고로 그의 제자 한재권씨가 예능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뛰어난 로봇연구소의 일원이었던 그지만, 우리나라에서 그의 이미지는 '예능에 출연한 GEEK' 정도가 아닐까.

그를 대중들에게 유명하게 만든 TED강연: Making a car for blind drivers


2) 로봇
데니스 홍의 강연 중,  RoboCup이라는 로봇 축구대회의 우승자가 일본의 독식 > 독일2회 -> 현재 미국 4연승 중이라고 한다. 아마 로봇산업의 헤게모니도 이와 비슷하게 흘러갔을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국의 강점은, 당장의 Output이 아니라 기반기술들을  착실히 다져나가다가 필요한 순간에 이를 폭발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완전히 동의한다.

반면 그는 국내 로봇 수준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한국 로봇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 뛰어난 인재도 많고 정부 지원도 있는데, 그 방식이 한참 잘못 됐다는 것. 정부는 "몇 년 안에 어떤 걸 만들어오라" 라고 이야기하고, 그것이 달성되어야만 다음 지원금이 나간단다. 그러다보니 이것저것 해보다 안 되면 미국,일본,유럽의 기술을 짜깁기 해 결과물'만' 내놓는 행태가 반복되는 것이다. 여전히 Fast Follower 전략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기술은 생각보다 어렵고 삽질할 시간이 필요하다. 데니스홍 교수의 휴머노이드 로봇도 20미터를 전진하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에 3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우리나라에게는 진정 삽질할 여유가 없는 것일까. 언제쯤 여유가 생길까.


강연 호스트가 물었다. "로봇 산업에서 가장 난제를 겪고 있는, Breakthrough가 필요한 기술은 무엇인가?"
A. 음...로봇기술은 아닌데, 배터리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배터리가 아닌  전혀 새로운 Breakthrough가 필요하다
모든 IT와 첨단기술은 배터리로 귀결되는 모양이다.


3) 헬스밴드(Fitness Tracker)  vs 스마트워치
이번 CES의 화두는 Wearable과 IoT, IT for Auto 정도였다. TV부문은 New but Nothing attractive (QD와 OLED 경쟁)가 일반적인 평이다.

IT기기는 '쿨'한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뷰포인트를 준 사람이 건낸 아이디어. 사람들은 Wearable기기라는 게 티나면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몸에 차고 있던 것들의 Form Factor에서 벗어나지 않되, 기능이 WoW해야한다는 것.
그가 제시한 포인트는 시계와 글라스였다. 갤럭기 기어가 참패하고 애플워치가 성공이 예상되듯이, 스마트워치의 포지셔닝은 Little Smartphone이 아니라 Functional Watch여야한다. 글라스도 마찬가지로 구글글라스처럼 현재 안경과는 확연히 다른 폼팩터를 지닌 상태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뷰. 글라스는 아직 시장이 열리기엔 시기상조.

단기적으로 Wearable에서 고민해야할 포인트는 헬스밴드 vs 스마트워치로 보인다. Activity Checker 수준의 역할을 맞고 있는 헬스밴드냐, 다기능성의 스마트워치냐의 문젠데 역시 핵심은 배터리 이슈다. 소비자들이 웨어러블 기기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일까? 무신경하게 언제든 찰 수 있는, 그러나 기능은 별로 없는 밴드인지, 이틀에 한 번 충전해야 하는 다기능성 시계인지 아직 고민해야할 부분으로 보인다.
 (Fitbit의 밴드. 쿨하다)
 
Fitbit 창업자 인터뷰 - 왜 스마트워치를 하지 않는가 - 소비자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James Park라는 이름이나, 생김새나 재미교포로 보인다)
 
 
스마트워치는 결국 - 기존 시계만큼 예뻐야 하고 - Health Band를 이겨낼 만큼 기능적이어야 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라면, 나는 차라리 Health Band를 살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번 유가 하락을 가장 명료하게 정리한 글.
“It’s a turning point in the way people perceive OPEC, that this so-called cartel is not really driving prices,” said Jeff Colgan, a professor at Brown University’s Wat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Studies who researches the geopolitics of energy. “The real story is going to be about the fracking industry. How much pain can North American producers ta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