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5일 토요일

Legacy Cost

주식시장에서 Legacy Cost라는 단어는 흥미롭다.

유독 주식 시장에서만 통용되는 잘못된 단어(ex. 기고효과) 나 잘못쓰이는 단어들 중 하나가 legacy cost라고 생각하는데, 사전적인 의미로는 '유산비용' - 회사가 퇴직자와 그 가족을 위해 부담하는 보험과 연금비용.
주식시장에서의 의미: 과거부터 영위해오던 사업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 혹은 부담.


2년 전에 Legacy cost를 직접 언급한 기업은 삼성전자.

2년 전에 저장해둔 글

1) S전자가 온라인 판매를 본격화하지 못 하는 이유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글로벌 오프라인 유통망이 너무 heavy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의 비중이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자연스럽게 하락하기 전에는 S전자가 샤오미처럼 온라인에서 드라이브를 걸기는 어렵다. (샤오미에 대한 가치판단은 논외로 하자.)

2) 엔씨소프트가 모바일 비지니스를 본격화하지 못 하는 이유는, 리니지1의 유저층과 매출이 워낙 견고하기 때문이다. NC는 리니지1 IP로 모바일 게임을 만들 때, 게임성과 흥행성 뿐 아니라, 기존PC버젼에 대한 구축효과가 없도록 해야한다. 모바일이 너무 흥행해버리면, 혹은 모바일과 리니지1을 연동시켜버리고 밸런스에 문제가 생기면 모바일 리니지는 오히려 회사에 해를 끼치는 게임이 되어버린다.

지인은 엔씨의 이러한 현상을, 기존 제조업에서만 쓰일 법한 Legacy Cost라는 용어로 풀이했다. 한계비용이 없는 최첨단 비지니스에서도 기존의 것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다.

3) 국가적으로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은 Legacy Cost없이 완전히 깨끗한 상태에서 뜻을 모아 만들어나간 나라이다. 난 미국의 초강대국적 지위에 대해 1) 육로로 침략불가한 지리적 여건, 혹은 방관자적 여건 2) 막대한 자원 3) 완전히 새롭게 꾸려나간지 300년이 채 되지 않은 Fresh함 4) 새롭게 꾸릴 때 성공적인 민주주의-자본주의-개인주의 이념 정착시킨 것.  를 통해 가능했다고 간략하게 판단하는데, Legacy Cost가 없다고 표현하면 맞을 거 같다.

Legacy는 결국 언젠가는 버리고 처리하고 떨어내고 나가야할 것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legacy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기업의 현실 판단이 올바르고 냉정하다는 뜻도 된다. 우리는 쇠퇴해가는 기존 사업에 집착하다가 완전히 망해버리는 무수히 많은 기업을 목격했다. 앞으로 Legacy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하는 기업들과 그 사업군에 대해 좀더 의미있게 바라보면 재밌을거같다.


지금 시점에서 다시 돌이켜 보면

1) 당시 S전자를 위협하던 샤오미는 중국 내에서도 점유율을 잃어버렸고 Oppo니 Vivo니 하는 신생업체들과 화웨이라고 하는 전통의 강자 사이에 묻혀버렸다. 물론 샤오미의 청소기나 전동휠, 선풍기 등 훌륭한 제품들이 있긴 하지만 모바일 사업에서의 샤오미는 정점을 찍고 꺾여버렸다. 반면 S전자는 노트7이 폭발하기 전까지는 성공가도를 유지했다. 노트7이 성공했다면 지루해져버린 애플을 이겨낼 수 있었을 정도였겠지만, 노트7 없이도 그럭저럭 매출을 유지했을 만큼 하이엔드 시장의 탑2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그 사이에 유통망 구조가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았다. legacy가 cost가 아니라 지속적인 성공을 이어가는 주춧돌로 작용하고 있다.

2) 반대로 엔씨소프트는 Legacy를 지키지 못 하는 위협을 맞이하고 있다. Legacy cost로 인해 모바일 신작을 계속 딜레이 시키면서 매출을 유지해오는 전략을 취했는데, 이제는 정말 Legacy가 무너지고 있다. 아데나 가치가 폭락하고 집행검이 안 팔린다는 기사가 돌아다닌다. PC방에서의 게임시간 점유율도 줄어들었다. 거의 20년을 끌어온 리니지1의 '유산'이 무너지려는 위기 앞에 놓여있다.
그리고 리니지1 유저들을 데려간 것은 자사의 IP이지만 자사가 개발하지 않은 린2레볼루션이 었다. 충성고객들을 자사의 차기작으로 이어오던 엔씨의 신화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놓여있다. 리니지1이 굳건할 때의 엔씨에게 모바일 게임은 +@였지만, 리니지1이 무너진다면 엔씨에게 차기 모바일 신작 리니지M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절실한 게임이 되어간다.


3) 박근혜의 또다른 패악은, 시대가 필요로 하는 키워드들을 제시한 뒤에 이를 모두 똥통에 빠뜨려 버린 데에 있다. 노동개혁과 창조경제가 그것이다. 노동개혁에 덧붙였던 키워드는 3년의 희생으로 30년의 성장동력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3년의 희생을 설득할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 했기 때문에 이 나라는 30년의 각오를 해야할 지경에 이르렀다. 당분간 이 키워드들은 그 필요성과 절박함과는 별개로 박근혜의 유산으로 낙인찍혀 언급되지 조차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는 많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골든타임에 시도해 봐야 할 정책들은 수면 위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80만 공무원 양병설로 사회전체의 인센티브 구조를 나락으로 빠뜨리려는 후보의 대세설을 맞이하고 있다. 그는 정책적으로는 빵점이지만, 국민들은 정책적 검증을 할 시도를 하지 않는다.


내공빛난 바른정당, 수준높은 대화의 정석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F21&newsid=01485846615866928&DCD=A00602&OutLnkChk=Y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두 후보의 수준 높은 대화는 아무런 가치도 만들지 못 한다. 이런 수준높은 대화는 민주당 경선에서 이뤄졌어야만 했다.

민주당 경선이 마치 우리나라 양궁대표팀 선발식처럼 여겨지고 있다. 여기서 게임의 룰은 명확하다. 상대보다 높은 점수를 쏴야 한다. 상대선수를 쏴서 죽이는 방식은 룰을 깨는 것이다. 서로 계속 활을 쏘다가는 다른 후보가 어부지리로 부상할 수도 있다.
민주당이 쉬운 승리를 놓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올바른 정책으로 후보들이 과녁을 맞추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2017년 3월 18일 토요일

지극히 사적인 글

오래 만난 여자친구에게 권태기가 온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한두달간을 돌이켜보면 이미 행동으로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모르던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충격이 컸다. 나는 권태기라고 느낄 만한 감정적 변화가 없었기에.

처음에는 마치 지진과 같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진이 공포스러운 이유는 1) 내 삶을 지탱하는 땅이라는 근본 자체가 흔들리는 물리적 심리적 충격을 주는 사건인데다 2) 정확한 시점의 예측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대비가 불가능하고 3) 발생했을 시에 마땅한 대응방안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나는 한결같이 좋아해왔기 때문에 감정적인 대비가 불가능했다.
발생 초기에는 마땅한 대응 방안도 없었다. 나의 감정이 아니고 그녀의 감정이기 때문에.
내 삶을 온전히 의지하던 사람의 변화로, 내 삶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 있었다.

대략 2주간은 아무것도 할 수없어  방황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변화를 얘기하려면 그에 앞서 내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일이 있기 전부터 나는 막연히 내 삶을 이렇게 정의내리고 있었다.
내 삶을 구성하는 가변적인 축은 세 가지. 일, 게임, 그리고 여자친구.
(가족과 친구는 언제나 내편을 들어주는 상수이므로 논의에서 제외했다)

먼저 게임에 관해 말하자면, 난 대략 초등학교4학년 즈음 출시된 스타크래프트1을 시작으로 단 한번도 게임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고3때도 최소한 주간 단위로 한 번도 온라인게임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일을 시작하고 헤비한 게임을 할 시간이 없어지게 된 이후로는 오히려 매일매일 출석보상이 있고 라이트하게 즐기는 게임을 하게 되면서 주중이고 주말이고 출장을 가서도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스타1-워크3-카오스-WOW-LOL-하스스톤-풋볼데이-조조전 모바일-린2레볼루션
(그렇다 나는 블리자드 팬이다)

오버워치를 하기에는 내 손이 너무 느려졌고 패배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 MMORPG에서 WOW를 기대하는 나에게 린2레볼루션은 너무나 경쟁적인 게임이었다.
12월14일 린2레볼루션이 출시된 이후 나름 현질도 해가면서 만렙을 빨리 찍은 편이었으나, 만렙이 120에서 150으로 풀리자마자 나는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리고는 새로운 게임을 찾지 못 하게 되었다.
이렇게 정말 우연한 계기로 올해 1월, 나는 내 삶의 한축이라고 생각하던 게임을 놔버렸다.
게임은 '재미가 없어져서' 놔버렸기 때문에 정말 자연스러웠고, 아쉽지 않았다.
재미있는 게임이 불현듯 나타나면 게임은 다시 내 삶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 다음은 일이다.
사실 일이라고 딱딱하게 정의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일과 퇴근 후 삶이 전혀 분리되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고, 그래서 행복하다.
하지만 재미와 별개로 일의 성과가 Vol이 워낙 크다는 단점이 있다.
여자친구와 게임이 있을 때는 이 둘이 내 삶의 stability를 높여주고 일이 Vol을 주면서
우상향하는 인생의 싸이클을 그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1월에 게임을 그만한 와중에, 2월의 성과가 매우 좋지 않았다.
시장의 성격이 워낙 요상했기 때문으로 현재 시점에는 판명되고 있지만 2월 한달을 끊어놓고 보는 입장에서는 괴로움이 극에 달했다.

이런 와중에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지진처럼 흔들린 것이다.
내 인생의 축 세 가지가 동시에 망가져버린 2월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 일이 있고 나서야 깨달았다. 일과 게임과 여자친구가 3:3:3이 아니었고,
게임이 없어진 이후 일과 여자친구가 5:5의 factor가 아니었음을.
여자친구와의 관계정립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일은 전혀 손에 잡히지 않았다.
3가지 factor가 동등한 관계였다면, 한 축이 무너질 때 다른 축이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여자친구와 안 좋을 때 게임을 하면서 잊을 수 있어야 하고, 일을 더 열심히 하면서 더 나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못 했다. 여자친구는 다른걸 완전히 압도할 정도로 중요한 factor였다.



생각이 이렇게 정리되고 나니 나는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고민의 결론은 자존감이었다.

모든 것은 자존감의 문제로 귀결된다. 내가 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그녀의 남자친구로 나를 정의하는가 vs 내가 오롯이 있고 그녀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정의하는가. 나를 회사원으로 정의하는가 vs 내가 다니는 곳을 회사로 정의하는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안 좋을 때 집착하게 되고, 회사생활이 불안정할 때 사내정치와 아부를 하게 된다. 돌파구를 잘못된 방식으로 찾는 것이다.

나는 회사에 대해서는 철저히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이 회사가 아니어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오만에 가까운 생각이 있었고, 입사 후 지속적으로 회사욕을 하면서 다니고 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절이 다니기 싫을 정도로 싫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절이 쫓아내면 툴툴 털고 미련없이 나갈 수 있는 중의 자세로 사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선 그러지 못 했다.
흔히 말하는 밀당이 없었다. 재고 따지지 않고 다주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그러고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 협상할 필요가 없다면, 양측 모두 협상력을 무기로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나의 행복도는 여자친구의 감정에 매우 탄력적'이었다. 양측이 서로를 많이 사랑하고 있을 때에는 나의 행복도 curve가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없었다. Dynamics가 있기 전에는 static model이기 때문에 나는 curve가 아닌 '매우 높은 수준의 행복도'라는 한 점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런데 여자친구의 감정곡선이 이동하면서, 나의 curve와 만나는 점이 변해버렸다. 그제서야 드러난 나의 행복도 곡선은 매우 탄력적이었고, 나는 감정적으로 무너졌다.

내 행복도 곡선이 이렇게 탄력적인 것도 결국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매달렸기 때문이었고, 권태기라는 이야기를 접한 초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바꾸어 생각해보자. 권태기라는 것은,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감정곡선을 단순히 이동시켰을 뿐 아니라 '나의 사랑에 대한 본인의 행복도 곡선을 비탄력적'인 모양으로 변경한 것이다. 커브를 세워버린 것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여자친구의 감정변화는 크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집착할수록 역효과가 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여자친구의 자존감은 과거 몇달간 높아져왔다)

여자친구의 감정곡선은 내가 바꿀 수 없는 외부변수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나의 여자친구에 대한 감정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정적인 측면에서는 여자친구의 나에 대한 감정이 돌아온다면 과거와 같은 지점에서 만날 것이다. 나의 행복도와 여자친구의 행복도가 과거와 같은 곳에 찍힐 것이다.
내가 바꾸려고 하는 것은 dynamics다.
커브를 세우는 것이다.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다.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내가 전혀 알지 못 한다. 끊임없이 마음수양을 하고, 집착하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이번 사태의 해결책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나의 자존감은 상당히 높아졌다. 그리고 좀더 다행스럽게도, 경제적으로는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존감이 최악까지 무너지는 경험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마음의 변화만으로도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운동을 시작했다. 시간이 남기도 했고, 번잡한 생각을 그만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나의 자존감을 높이는 동시에, 나의 노력이 여자친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측면도 있다.

자존감을 높이는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중이고, 여자친구를 기다리는 중이다. 아직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