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것과
할 수 없어서 하지 못한 것.
의지(willingness)의 문제와 실현가능성(possibility)의 문제를 헷갈릴 때 비극이 발생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이윤극대화 (기업) - 소득극대화 (가계) 를 추구하는 대다수의 경제주체는 거의 항상 '의지'의 문제가 아닌 '가능성'의 문제에 직면한다.
더 벌기 싫어서가 아니라, 더 벌 수 없어서 못 버는 것이다.
매출을 더 올리기 싫어서가 아니라, 판매할 시장을 개척하지 못 해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지 못 해서,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지 못 해서 매출이 더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2. 그래서 기업이 '앞으로 이익률을 올리겠다' 라고 이야기할 때는, 과거에 왜 이익률이 낮았는지, 일시적인 요인이 있었는지, 이윤을 낮춰야할 '의지'가 있었는지 (그런 경우는 Corporate Governance 이슈를 제외하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를 따져 봐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이익률이 '높아질 수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낮은' 상태인 기업이고, 따라서 이익률을 올리는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닌 불가능의 문제로 결론날 때가 많다.
이익률은 그 기업이 최선을 다해 기업활동을 한 최종적인 결과값이지, 의지를 가지고 컨트롤하는 변수가 아니다.
기업이 마진과 관련해서 의지를 논할 수 있는 경우는 시장의 도미넌트 플레이어가 Market Making을 하는 정도만 가능하다.
이를 테면 삼성전자가 디램 산업에서 치킨게임을 중단하고 (M/S war) 마진을 지키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2. 노동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제대로 된 기업이라면 이윤 극대화의 과정에서 최적화된 규모의 사람을 고용하고, 최적의 근로시간을 유지하며, 최적의 임금을 제공한다.
기본적으로 기업은 사람들의 유기체로서 작동하며, 같은 업종을 영위하면서도 다른 결과를 내는 기업들의 근간에는 결국 인적 자원의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게 몇 명의 키맨일 수도 있고, 회사 전반을 아우르는 이른바 '기업 문화'일 수도 있다.
돈을 버는 기업이 사람을 더 뽑는 것이 한 편으로 의지의 문제처럼 보일 수 있지만, 기업 입장에선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일 확률이 높다. 최적의 이윤을 찾아가는 측면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3. Willingness 와 Possibility가 애매한 영역은 '착취'(exploitation)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발생한다.
산업혁명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평균 근로시간의 문제는 노동의 '착취'에서 정상적인, 그리고 인간적인 노동 형태로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근로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52시간 근로제는, 기존의 노동시간을 '착취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으로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레토릭은 그러할 것이다.
'일자리 만들기', '소득주도 성장'을 모토로 삼은 경제정책 하에서, 개별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줄이면 기업이 고용을 늘릴 것이라는 단순한 산수를 한 것은 아니길 바란다.
우리는 근로시간을 측정했지만, 근로강도를 측정하지 않았다. 최근 기업들의 대응은 고용확대가 아니라 근로 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정부는 Exploitation의 정상화, 기업들의 Willingness 측면에서 근로시간과 고용을 접근했지만, 기업들은 Possibility의 문제로 접근한다. 고정비를 늘리면서 사람을 더 뽑을 수 있는가? 기업들의 대답은 '아니오' '어렵겠지만 더 열심히 해봅시다'일 확률이 높다.
4.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 편의점 본부와 가맹점주의 문제, 마트와 전통시장의 도 마찬가지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협력사들을 '착취'하고, 편의점 본부가 가맹점주를 착취하고, 대형마트가 전통시장을 쫓아낸다고 생각하면, 그 해답은 '상생'이다.
상생이란 키워드를 정책적으로 강조하는 이면에는, 기존의 관계를 착취적 갑을 관계, 상하관계, 대기업의 횡포와 이에 따른 피해자 등으로 규정하는 인식이 깔려있다.
물론 과거에는 꽤 많은 부분이 그랬을 것이고, 지금도 일부는 그럴 것이다. 대금 결제를 미루고, 자회사와 경쟁시켜서 단가를 깎고, 불리한 수수료율을 제시했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 중심의 성장과정을 미루어 볼 때 이러한 관행들이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러나 착취를 문제 삼으려면 Process를 문제 삼아야 한다. 공정하지 못 한 프로세스는 대통령을 바꿀 만큼 다수의 공분을 살 수 있는 주제이다.
착취의 판단 잣대가 겉으로 보여지는 결과물이어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 이익률은 20%인데 부품사는 7%인 이유는 다 하청업체를 착취하기 때문이다. 편의점 본부만 돈 벌고 가맹점주는 24시간 일하고 월 200을 못 가져간다, 대형마트가 들어오니 전통시장이 죽었다. 라고 하는 것은 부조리하다.
삼성전자, 현대차와 부품사가 어떤 불공정 계약을 맺었는지, 편의점 본부가 가맹점을 모집할 때 잘못된 매출 예측값을 제시하진 않았는지, 대형마트가 전통시장을 죽이기 위한 의도가 있었고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무언가를 제시했는지. 등을 보고 '착취'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5. 돈 잘 버니 니가 더 고용해라, 니가 더 양보해라, 니가 희생해라 라고 강요하는 것은 폭력적이다. 정치는 분명 게임의 룰을 바꾸는 힘이 있다. 게임의 룰이 너무 공격적이고 지협적으로 가면 곤란하다. 프로세스에 대한 룰을 확립해야지, 결과값을 지정하려 해선 안 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윤 극대화 프로세스를 빗겨나라고 요구받는 순간 기업의 장기적 이익체력은 훼손된다. 기업 전반이 그러한 요구를 받을 때, 국내 주식시장의 매력도는 낮아진다. 갈수록, 이른바 말랑말랑한 주식들의 상대적 매력도가 높아진다. 지금의 주식시장이 보여주는 한국경제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