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8일 토요일

잃어버릴 20년: 선진화, 인문적 시선.

부산 출장 중에,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EBS 통찰 에서 본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의 코멘트
(이 방송은 찾아보니 작년 여름쯤 방송된 듯 하다)

----
우리에게는 지금 건국의 세대, 산업화의 세대, 민주화의 세대가 혼재되어 있다.
그들은 각자, 그들이 성공했던 경험만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각 시대의 리더들은, 각 시대의 방식으로 미래의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은 건국도 아니고, 산업화도 아니고, 민주화도 아닌 '선진화'다. 우리는 선진화 시대에 맞는 리더를 가져야 하지만, 그런 리더가 부재하다.
우리는 건국,산업화,민주화에 이어 선진화로 나아가지 못 하고 벽 앞에 서서 세 시대가 부딪히고 있는 상황이다.

...

Q&A시간에 Host인 김대식 교수가 묻는다.

우리가 50년동안 너무 빠르게 성장하다보니, 국민들이 그냥 피곤한거 아닐까?
선진화가 너무 난이도가 높아서 못 한다기보다는, 그냥 20년 정도 쉬어주면 되는 거 아닐까?
그러면 어느 한순간 인문학적 레벨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때문인지, 20년이란 숫자는 왠지 모르게 상징적이다. 일반적으로 한 세대의 기준은 30년에 가까운데 말이다)

최진석이 답한다.

게임을 밤새서 하는 아들들을 보면, 피곤하다고 못 하는 건 아닌 거 같다.
빛을 발견하고 사명을 발견하면 피곤이 덜 할 것이다.
선진화라는 문제도 어렵고 피곤도 하겠지만, 그것에 대한 목표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에게는 선진화되려는 목표의식이 없을까?
나라에는 부와 혜택이 쌓였지만, 불평등한 분배 때문에
이 게임은 내 게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 아닐까?

불평등한 분배는 시선이 현재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시선이 미래로 향한다면 지금의 불평등, 지금의 조건이 갖는 의미는 희석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부자와 국민은 있지만, 자본가와 시민은 없다."
자본가와 시민은 미래를 어떻게 바꿔나가야겠다는 독립적, 주도적, 능동적 주체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lm18oOB18Y&t=1129s
-----

..일단 촛불 시민의 공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 '시민'의식은 올라온 듯 하다. 그러나 시민의식이 여기서 멈추어선 안 된다.
산업화의 리더(의 딸)을 끌어내린 것에 그치지 않고, 선진화의 리더에 누가 더 가까운가를 논쟁하고 선택하는 일까지 나아가야 한다.
나는 문재인이 현재까지 내놓은 경제정책을 보면 그가 민주화의 리더이고, 선진화의 리더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민주화의 리더임을 깎아내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자본가의 측면을 보자.
자본가는 실패를 감내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생존에 급급하지 않아야 한다. 미국의 스타트업들이 자본가적 기질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빛나는 Initiative만으로도 Funding을 받고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 하다.
그런 측면에서 내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자본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업군은 둘 밖에 없다. 글로벌 리더기업인 삼성전자. 내수 리더기업인 SK (SK의 근간은 SKT의 현금흐름이다)
내 기준으로 현대차는 생존이 급하고, LG는 이니셔티브가 발휘될 수 없는 의사결정 구조가 굳어졌다. (LG의 주주명부를 살펴보라. 너무나 많은 구씨가 LG의 배당금을 필요로 한다. 이 구조를 좋은 말로 人和의 LG라고 한다)

삼성전자의 자본가적 기질에 대해 논하기엔 내 내공이 부족하다. 자본가인지 아닌지, 자본가적 기질이 어떻게 발현되어야 맞는지.
삼성전자가 눈 딱 감고 2조원을 산업 생태계 조성에 써준다면 어떨까? 머 이런 상상
(맞다. 남의 돈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 맞다. 그러나 삼성전자에게 2조원은 쓸 수 있는 돈이다.
산업 생태계 조성은 장기적으로 그들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을까)

...

사실 최진석 교수와 김대식 교수의 조합은 처음이 아니다. 2년 전인가, '생각의 집'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부터 그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 당시 받은 느낌의 핵심은 이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려면 철저히 고립되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질문하는 사람이다. 대답할 때의 나는, 기존지식의 통로로만 존재한
다. 반면 질문은, 나의 인생경험에서 나온, 오로지 나만의 고유한 것이다.

'공부'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지 말라. 배웠다는 것에 만족하지 말라. 사고하라

동의한다. 그래서 주식에 대해서도, 결국 인문학적 레벨에 도달하는 순간 '대가의 가르침' '밸류에이션 방법론' 따위를 배우는 것은 무의미 해진다.
이미 뇌의 물리적 변화가 끝난 시점에서,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배운다'? 지향점으로 삼을 순 있겠지만 바뀌긴 너무 어렵다. 사실 나는 바꾸고 싶은 의지도 없다.
주식을 산다는 것은 결국 내 삶의 경험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것을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직업이 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인문대생을 뽑아서 주식을 시켜보자는 실험을  했던 회사가 생각난다.
인문학을 배운답시고 논어와 공자를 원문으로 읽고 있다던 사람이 보여준 그 얕은 깊이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인문학적 레벨'에 도달하는 것과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를 헷갈리는 그 수준.
인문학적 레벨에 도달하는 것은 선진화의 단계라면,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후진국-중진국에서 받아들여지는 개념이다.
인문학을 배우라는 게 아니라, 주식의 인문적 레벨에 도달할 수 있게 끝까지 가보라고 하는 게 포인트여야 한다. 그 방식은 1) 비합리적 간섭을 하지 않거나 2) 좋은 인센티브 구조로 개인의 동력을 유발하는 것이 되어야 맞다.

===

선진화, 앞으로 나아감과 관련해서또다른 통찰을 주는 책이 '축적의 시간'이다. 다소 암울한 결론으로 귀결되지만.. 이와 관련된 글은 다음 기회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