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2일 수요일

잃어버릴 20년: 축적의 시간

『축적의 시간』은 26명의 서울대 공대 교수들이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 관해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책으로도 재밌게 봤었는데, 최근에 뉴메이드인코리아 라는 KBS 다큐 2부작으로 제작되었다. 책 집필을 총괄한 이정동 교수가 다큐의 호스트로 직접 이끌어간다. (멋있게 생기셨다)

굳이 서평을 쓰고자 함이 아니기 때문에 편하게 느낌만 말하면,
책 자체는 같은 주제를 26명이 다른 분야의 이야기를 가지고 병렬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내용의 핵심을 보기에는 두시간짜리 다큐가 더 편했다. (물론 디테일은 책이 훨씬 풍부하다)

핵심은 이렇다.
우리나라는 개념 설계, 밑그림 그리는 작업을 하지 않았고, 못 한다. 흔히 말하는 EPC에서 C만 하고 E를 안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밑그림 그리는 작업은 모두 선진국의 기술력 있는 업체들이 독점한다. 유럽과 미국에 있는 업체들은 역사가 100년이 넘었으며, 그 축적된 노하우를 발전시켜 가며 자신들의 독창적인 영역을 열었다. 때로는 그들이 글로벌 표준을 새롭게 만들기도 한다.어짜피 그들밖에 못 하기 때문에 고객사들이 제발로 찾아오고, 높은 기술력을 통해 고객의 니즈에 부합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남들이 그려준 설계도 그대로 만드는 일만 반복한다. 그 설계도가 내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이 축적되지 않는다. 피드백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정해진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는 건 잘한다. 그러나 조금만 바뀌어도 당황한다.

축적은 두 가지 방식으로 가능하다.
선진국들은 오랜 역사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수직적 축적(시간적 축적) 을 이루어왔다.
중국의 방식은 다르다. 중국은 이미 많이 늦었기 때문에 넓은 땅과 인구를 바탕으로 수평적 축적(공간적 축적)을 시도하고 있다.

책과 별개로, 다큐는 이정동 교수가 Publy팀 앞에서 강의하고 Q&A 하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자기 손으로 풍력발전기를 만들어 전기를 생산한 아프리카의 캄쾀바 이야기. 그는 TED를 통해 유명인사가 되었고 책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다. 이것이 어찌보면 서양이 바라보는 아프리카에 대한 시선일 수도 있다. 와 아무것도 없는데 대단하네!

그러나 이정동 교수의 물음은 이것이다. 그의 불굴의 의지는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만들어낸 물건이 왜 우주선이나 전기차나 아이폰이 아니고 고작 허접한 풍력 발전기인가? 주변에 인프라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 실리콘 밸리는 고수들이 우글대며, 각자가 실패를 경험삼아 성장하고 협업하는 곳이다. 천재는 왜 선진국에서만 나오는가? 후진국-중진국의 기업가정신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다. 잘 살고자하는 멸망, 성공에 대한 열망은 오히려 후진국의 기업가들이 더 강하다. 인프라 부족, 축적의 부족이 문제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93eOLjr3NM

재밌는 멘트가 있다.
공장이 가면, 혁신이 따라간다.
리쇼어링은 물론 고용 때문도 있지만, 제조업에서 축적되는 혁신을 다시 본국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동의한다. 사실 고용과 혁신은 별개가 아니다. 기술이 사람에 체화되고, 구전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노하우다.

뛰어난 아이디어 하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이정동 교수는 no라고 말한다. 이걸 산업에 써먹을 수 있는 수준까지 Scale-up 해야한다. 수년씩 걸리는 이 과정을 참고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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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이 회사 내에 축적되는 과정을 보면 메가스터디의 몰락 과정이 떠오른다. 반대의 경우로서 말이다. 기술은 기술자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으로 '체화'된다. 많은 기술자들의 체화된 경험이 회사에 데이터베이스로 쌓인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고 대를 거쳐 구전되다보면, 회사는 어느 순간 과거와 다른 새로운 개념설계를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기술자들의 경험이 회사의 자산으로 축적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회사가 기술자들에게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는 주체가 된다.

메가스터디는 반대의 과정으로 몰락했다. 창업자 손주은의 명성으로 학생과 강사를 모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온라인 강의 시장을 개척했다. 그러나 메가스터디가 성공할 수록, 학생들의 로열티는 회사가 아닌 강사 개인에게 돌아갔다. 어느 수준을 넘어선 강사는 회사를 상대로 네고 파워를 갖게 된다. 어느 순간 메가스터디는 적자를 볼만큼 돈을 주면서 스타 강사를 붙잡아 놓든지, 떠나보내든지 하는 최악의 선택지만 남겨놓게 된다. 스타강사들은 제2, 제3의 손주은이 되어 자신들의 학원을 차린다. 그렇게 메가스터디는 힘을 잃었다.



2. 책이나 다큐를 다 보고 나면 전반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따지고 보면 20년 전부터 이야기되던 Nut Cracker를 좀더 면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제조업을 인정할 건 인정하고 가자. 우리나라는 왜 20년동안 망하지 않았고, 다른 후진국들이 (중국 제외) 따라오지 못 했는가?

정해진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는 일조차 못 하는 국가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들 중에 1) 적당한 기술력과 2) 낮은 불량률 3) 납기준수 를 무기로 하는 업체가 상당히 많고, 꽤 높은 이익률로 잘 살아남아있는 제조업체들이 많다. 그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밑그림을 그리는 일 뿐 아니라, 위에 밑그림대로 덧칠하는 것도 만만히 보면 안 된다는 것.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무언가 바뀌어야 하는 건 맞다. 예전부터 이야기했듯이, 우리나라는 지금 Best Performance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정해진 사회구조 속에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이게 이 책의 핵심 발제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쉽게 말해 20년을 잃어버릴 준비를 해야 한다. 근간 기술이 축적되길 바란다면, 근간 기술을 연구하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인센티브 구조를 사회가 만들어야 한다. 최소한 근간 기술을 연구하고, 획득하고, Scale-up하는 동안 적절한 경제적 지원이 가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근간 기술을 몇 년동안 묵히고 축적하는 과정은 외롭고 힘들고 고단하다. 더 쉬운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많이 있다면, 굳이 가고 싶지 않은 그런 길이다.
여기서 우리나라는 딜레마에 봉착한다. 기업들이 근간 기술이 없이도 "너무나" 잘 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빠르게 습득하고, 납기를 철저히 지키고, 때로는 스스로 적당한 기술적 진보를 이뤄가면서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고 있다. 외롭고 힘든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을 상대적 박탈감으로 내몰고 더 외롭게 만든다.

(근간기술 없이는 잘 하지 못 하는 분야가 기계분야라고 생각된다. 기계는 신뢰성을 오랜 시간 쌓아야 하기 때문에 지름길이 없다. 물리의 영역이고 장인 정신이 필요하다. 지름길로 달려온 우리나라에서 기계 장인이 되기에는 너무 고독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인 수준의 기계업체가 별로 없다. 특히 기계 설비, 부품업체가 없다.)


밑그림 위에 덧칠을 기가 막히게 해서 어떻게든 뛰어난 미술작품을 만들어내는 기술자가 있다면, 밑그림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지금 개념설계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얘기는, 아주 어려운 얘기다. Legacy를 갑자기 버리라는 것이다. 동남아 베트남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다. '덧칠 장인'을 다 감옥에 보낼 것인가? 그러면 20년을 잃어버리자는 얘기가 된다. 밑그림 장인을 키우고, 그 다음 착실히 다시 덧그림 장인을 키우자. 순차적으로 가자 머 그런 얘기를 해야한다. 불가능하다.


4. 내가 받아들이는 Radical한 방식의 재벌 해체는 덧칠 장인을 다 감옥에 보내는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대기업들의 돈버는 방식이 깨끗하지 못 했다. 지금도 대기업의 기술약탈을 두려워하는 중소기업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사회적 문제로서의 재벌-중소기업 문제는 충분히 이해한다. 재벌들의 자성도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 마라, 돈 벌지 마라 라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번돈으로 사회에 환원하라. 니네 마음대로 말고 정해진 방식으로. 이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가장 좋은 해법은 아마도, 재벌들에게 삥을 뜯어서 밑그림 장인을 키우는 것이다. Funding Structure만 잘 짜놔도 지금보다는 개념설계가 훨씬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남의 돈이라서 쉽게 얘기하는 거 맞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 정도 사회적 요구는 받을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5.우리나라의 R&D는 너무 단기적인 성과,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문제의식이다. 국가 연구과제인데 성공률이 90%란다. 다 되어있는 기술에 이름만 붙여서 R&D라고 한다. 교수들의 논문 개수를 본다던지, 언제까지 성과를 내고 결과물을 보이라던지 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렇게 됐을까? 일단 첫번째는 우리나라에 사기꾼이 너무 많다. 통계적으로 금융사범, 사기가 전세계 1,2위다. 아마 그냥 생각해보기로는 경제사적으로 고속성장하면서 남 등쳐먹으면서 성공한 케이스가 많기도 하고, 사기꾼이나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이 약하기 때문일수도 있다. 민족적 특성? 그런건 잘 모르겠다.

 경제학의 제1원칙은, 수요공급에 앞서서 Budget Constraint다. 돈이 무한하지 않으니 잘 쓰란 얘기다. 우리나라는 돈을 잘 써야만 한다. 결과물이 따르지 않는 R&D를 기다려줄 여유가 아쉽게 도 없다.

R&D 한답시고 서류 한장 만들어서 돈 타먹고 배째는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뭐라도 보여줄 수 있는 사람한테 경제적 지원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정말 슬프게도, 진정한 창의나 혁신은 결과를 요구하지 않을 때에 나온다. 그래서 딜레마다.


반면 돈이 무한해보이는 국가가 둘이 있다. 미국과 중국이다.

중국에는 아무리 많은 사기꾼이 있어도, 몇명의 천재를 성공시키기 위해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다. 그 결과물이 BAT였을 것이고, BYD, 오포 비보, 화웨이, 샤오미 등이었을 것이다.

미국은 R&D 성공의 기댓값이 상대적으로 높고 효율적인 구조라다고 생각된다. 돈을 준 사람이 결과물을 독촉하지 않아도 '기업가 정신'으로 굴러간다. 국가의 인센티브 구조가 R&D의 성공과 창의성 발현이라는 방식으로 제대로 맞춰져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에는 정말 큰 부를 이루는 자수성가형 부자들이 많았다. 미국은 부자를 동경하고, 부자들 역시 기부 등으로 사회에 환원하여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현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부자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미국과 다르다. R&D 성공에 대한 사회적 인센티브 구조가 잘 짜여져있다고 보기 힘들다. 우리나라는 부자를 부러워할지는 몰라도, 동경하거나 존경하지 않는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네놈이나 나나 똑같이 흙밥먹던 똑같은 사람인데 운이 좋아서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돈버는 과정이 깨끗하지 못 했다는 걸 다 같이 지켜보고 성장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부자를 신뢰하고, 부자됨을 축하해주는 풍토가 아니다. 위엣놈을 끌어내려서 평등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6. 정말 슬프게도, 성공적으로 '축적의 시간'을 가져왔던 기업의 예시로 나온 것이 LG화학 배터리 사업이다. 난 LG화학 배터리는 개념설계가 아니라 덧칠(모듈) 비지니스로 생각하고 있으며, 전기차 업체들에 종속되어 궁극적으로 돈을 못 버는 비지니스라고 생각한다. LG화학 배터리가 없으면 전기차업체들이 차를 만드는 게 불가능할까? 아니다. '조금더 싸게' 만들지 못 할 뿐이며, '조금더 싼' 전기차를 위해 LG화학은 적자를 감수하고 있다.

아직도 Scale-up하는 과정일까? 모든 자동차가 전기차로 바뀌면 LG가 돈을 벌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LG화학이 계속 돈을 못 벌 가격에 공급해야 만 전기차가 확산된다. 최초의 산업 ROIC를 잘못 구했기 때문에 지금은 매몰비용의 오류를 겪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7. 다큐 중에 조선업이 나온다. "우리 조선업은 비싼 수업료를 치르는 과정에 있다" 난 그러나 저 코멘트에 반대한다. 우리나라 조선사는 밑그림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도 있지만, 밑그림을 보지도 않고 짓겠다고 덤벼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밑그림을 직접 그리는 능력이 있어야만 밑그림이 맞는지 틀린지 알아볼 수 있는건 아니다.

조선사들의 해양플랜트에서 Lesson Learned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논의가 분분하다. 이것은 다음 수업이 있기 전에는 검증할 방법이 없다. 있었기를 바란다. 살아남는다면.

해양플랜트의 발주자는 크게 둘로 나뉜다. IOC (International Oil Company) 와 NOC (National Oil Company). 우리나라는 산유국이 아니다. NOC가 없다.
NOC는 시행착오와 실패를 각오하고 자국 업체들에게 발주를 줄 수 있다. 레퍼런스를 쌓을 기회를 갖는 것이다. 중국에는 NOC가 있다.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걱정하는 것이 중국과의 경쟁이기 때문에 이것은 분명 큰 위험요소이다.

그러나 IOC들은 유전 하나 잘못되면 회사가 휘청하기 때문에 수십년간 안정성이 검증된 업체를 쓴다. 우리나라업체들이 수조원의 적자를 보긴 했지만 어쨌든 납품을 했고, 이는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8. 선진국이 괜히 선진국이 아니다. 앞에 나가있을 뿐 아니라, 뒤따라오는 사람들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후발주자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도구를 가지고 있다.
'레퍼런스를 가져와라' = 경험 없으면 판에 끼워주지도 않겠다. 마치 신입 채용하는 데 경력사항 적는 우리나라 풍토랑 똑같다. 그것 자체가 진입 장벽이다.

내가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가장 거대한 사다리 걷어차기는 '윤리'다. 환경 윤리, 생명 윤리, 인권, 안전.

'지구에 사는 인류 공동체로서 환경을 보호해야지'. 석탄 쓰지 마라. 저감장치 달아라. 중국 때문에 환경이 실제로 나빠지는 것과 별개로, 개발도상국들의 비용을 높여서 개발을 더디게 하겠다는 복선이 깔려있다. 영국은 무식하게 석탄을 때려박아가며 최초의 산업을 일궜다.

인권을 강조하며 인건비를 높인다. 노예를 쓰던 미국과, 아동노동 문제가 심각했던 유럽이 그렇게 이야기한다.
생명 윤리. 인간의 난자를 쓰지 맙시다! 줄기 세포는 위험합니다! 전쟁 시기에 살아있는 인간을 마루타 삼아 의학기술을 축적한 전범국가들이 그렇게 이야기한다.

인간의 역사는 좋은 방향으로 진보하기 때문에, 과거에 그런 일들이 발생했다고 해서 지금도 발생해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래서 '윤리'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 경제논리를 따지기 궁색해진다. 그만큼 경제적 격차를 확대하기 좋은 무기이다.


9. 이것을 싸그리 무시하고 마음대로 한 게 아이러니하게도 공자의 나라 중국이다.
중국의 목숨값은 싸다. 자신들의 기술로 철도와 기차를 짓고, 사고로 사람 수십 수백명이 사망하는 과정을 겪어가며 철도 기술을 축적했다. 그들은 지금 세계수준의 고속철을 만든다.
환경문제를 다 무시하고 굴뚝산업들을 지배해버렸다. 이제야 조금씩 신경쓰지만, 이미 제조업을 재패해버린 상황이다.
생명 윤리 역시 미흡하다. 중국에서는 10년 전부터 줄기세포에 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윤리와 도덕률의 잣대를 치워버리고, 중국은 자본주의적 성장에 집중했고 성공하고 있다. 물론 중국 역시 여기서 더 나아가고 선진국 반열에 오르려면 윤리의 세계에 들어와야 한다. 이제는 같은 게임의 룰로 임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 할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10. 중국이 접근하는 축적의 방식은 공간적, 수평적 축적이다. 난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이런 방식이 먹히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밝게 보며, 중국이 단기,중기적으로는 대만과 같은 반도체 산업을 추구할 것으로 생각한다. 메모리 반도체는 시간이 필요하다.

수평적 축적이 가능하려면 1) 기술의 발전이 빠르지 않아야 하고  2) 기술들 간의 연속성이 적어야 한다.
100층짜리 건물 100개를 동시에 100가지 방식으로 지어보면 가장 적합한 방식 한 두가지를 찾을 수 있다. 다음에 100층짜리 건물을 쌓기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했다.
그러나 반도체는 이런 게임이 아니다. 말하자면 한번에 150층, 200층을 쌓는 게임이 아니라, 100층짜리 건물 위에 2년마다 50층씩 쌓아나가는 게임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30나노를 해보지도 않고 25나노 20나노를 할 수는 없다. 24단을 연구하지 않고 48단 64단을 할 수는 없다. 상용화된 기술로 내놓지 않더라도 최소한 연구실에서는 연속적인 기술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그 단계단계에서의 Breakthrough가 필요한데, 반도체 개발은 은근 아날로그적인 부분이 많아서, Trial & Error 방식으로 최적값을 찾는 경우가 많다. 왜 삼성이 잘할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똑똑한 공대생들이 매일 날밤을 까며 Trial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메모리 업체 Micron은 몇년 전부터 생산을 예상만큼 원활히 하지 못 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FAB(공장)이 여러 국가에 나눠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공장에서의 기술적 해법이 대만과 일본에서는 적용이 안 된다. 반도체 업계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고 한다.
같은 공장 1층에서 되던 게 2층에서 안 된다고.
그만큼 미세하고 예민하기 때문에 공간적 축적, 수평적 축적은 쉽지 않다. 조건이 다르면 처음부터 시작하는, 수직적 축적의 산업이다.


2017년 4월 8일 토요일

잃어버릴 20년: 선진화, 인문적 시선.

부산 출장 중에,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EBS 통찰 에서 본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의 코멘트
(이 방송은 찾아보니 작년 여름쯤 방송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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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지금 건국의 세대, 산업화의 세대, 민주화의 세대가 혼재되어 있다.
그들은 각자, 그들이 성공했던 경험만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각 시대의 리더들은, 각 시대의 방식으로 미래의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은 건국도 아니고, 산업화도 아니고, 민주화도 아닌 '선진화'다. 우리는 선진화 시대에 맞는 리더를 가져야 하지만, 그런 리더가 부재하다.
우리는 건국,산업화,민주화에 이어 선진화로 나아가지 못 하고 벽 앞에 서서 세 시대가 부딪히고 있는 상황이다.

...

Q&A시간에 Host인 김대식 교수가 묻는다.

우리가 50년동안 너무 빠르게 성장하다보니, 국민들이 그냥 피곤한거 아닐까?
선진화가 너무 난이도가 높아서 못 한다기보다는, 그냥 20년 정도 쉬어주면 되는 거 아닐까?
그러면 어느 한순간 인문학적 레벨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때문인지, 20년이란 숫자는 왠지 모르게 상징적이다. 일반적으로 한 세대의 기준은 30년에 가까운데 말이다)

최진석이 답한다.

게임을 밤새서 하는 아들들을 보면, 피곤하다고 못 하는 건 아닌 거 같다.
빛을 발견하고 사명을 발견하면 피곤이 덜 할 것이다.
선진화라는 문제도 어렵고 피곤도 하겠지만, 그것에 대한 목표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에게는 선진화되려는 목표의식이 없을까?
나라에는 부와 혜택이 쌓였지만, 불평등한 분배 때문에
이 게임은 내 게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 아닐까?

불평등한 분배는 시선이 현재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시선이 미래로 향한다면 지금의 불평등, 지금의 조건이 갖는 의미는 희석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부자와 국민은 있지만, 자본가와 시민은 없다."
자본가와 시민은 미래를 어떻게 바꿔나가야겠다는 독립적, 주도적, 능동적 주체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lm18oOB18Y&t=112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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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촛불 시민의 공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 '시민'의식은 올라온 듯 하다. 그러나 시민의식이 여기서 멈추어선 안 된다.
산업화의 리더(의 딸)을 끌어내린 것에 그치지 않고, 선진화의 리더에 누가 더 가까운가를 논쟁하고 선택하는 일까지 나아가야 한다.
나는 문재인이 현재까지 내놓은 경제정책을 보면 그가 민주화의 리더이고, 선진화의 리더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민주화의 리더임을 깎아내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자본가의 측면을 보자.
자본가는 실패를 감내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생존에 급급하지 않아야 한다. 미국의 스타트업들이 자본가적 기질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빛나는 Initiative만으로도 Funding을 받고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 하다.
그런 측면에서 내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자본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업군은 둘 밖에 없다. 글로벌 리더기업인 삼성전자. 내수 리더기업인 SK (SK의 근간은 SKT의 현금흐름이다)
내 기준으로 현대차는 생존이 급하고, LG는 이니셔티브가 발휘될 수 없는 의사결정 구조가 굳어졌다. (LG의 주주명부를 살펴보라. 너무나 많은 구씨가 LG의 배당금을 필요로 한다. 이 구조를 좋은 말로 人和의 LG라고 한다)

삼성전자의 자본가적 기질에 대해 논하기엔 내 내공이 부족하다. 자본가인지 아닌지, 자본가적 기질이 어떻게 발현되어야 맞는지.
삼성전자가 눈 딱 감고 2조원을 산업 생태계 조성에 써준다면 어떨까? 머 이런 상상
(맞다. 남의 돈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 맞다. 그러나 삼성전자에게 2조원은 쓸 수 있는 돈이다.
산업 생태계 조성은 장기적으로 그들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을까)

...

사실 최진석 교수와 김대식 교수의 조합은 처음이 아니다. 2년 전인가, '생각의 집'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부터 그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 당시 받은 느낌의 핵심은 이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려면 철저히 고립되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질문하는 사람이다. 대답할 때의 나는, 기존지식의 통로로만 존재한
다. 반면 질문은, 나의 인생경험에서 나온, 오로지 나만의 고유한 것이다.

'공부'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지 말라. 배웠다는 것에 만족하지 말라. 사고하라

동의한다. 그래서 주식에 대해서도, 결국 인문학적 레벨에 도달하는 순간 '대가의 가르침' '밸류에이션 방법론' 따위를 배우는 것은 무의미 해진다.
이미 뇌의 물리적 변화가 끝난 시점에서,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배운다'? 지향점으로 삼을 순 있겠지만 바뀌긴 너무 어렵다. 사실 나는 바꾸고 싶은 의지도 없다.
주식을 산다는 것은 결국 내 삶의 경험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것을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직업이 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인문대생을 뽑아서 주식을 시켜보자는 실험을  했던 회사가 생각난다.
인문학을 배운답시고 논어와 공자를 원문으로 읽고 있다던 사람이 보여준 그 얕은 깊이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인문학적 레벨'에 도달하는 것과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를 헷갈리는 그 수준.
인문학적 레벨에 도달하는 것은 선진화의 단계라면,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후진국-중진국에서 받아들여지는 개념이다.
인문학을 배우라는 게 아니라, 주식의 인문적 레벨에 도달할 수 있게 끝까지 가보라고 하는 게 포인트여야 한다. 그 방식은 1) 비합리적 간섭을 하지 않거나 2) 좋은 인센티브 구조로 개인의 동력을 유발하는 것이 되어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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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화, 앞으로 나아감과 관련해서또다른 통찰을 주는 책이 '축적의 시간'이다. 다소 암울한 결론으로 귀결되지만.. 이와 관련된 글은 다음 기회에.

2017년 3월 25일 토요일

Legacy Cost

주식시장에서 Legacy Cost라는 단어는 흥미롭다.

유독 주식 시장에서만 통용되는 잘못된 단어(ex. 기고효과) 나 잘못쓰이는 단어들 중 하나가 legacy cost라고 생각하는데, 사전적인 의미로는 '유산비용' - 회사가 퇴직자와 그 가족을 위해 부담하는 보험과 연금비용.
주식시장에서의 의미: 과거부터 영위해오던 사업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 혹은 부담.


2년 전에 Legacy cost를 직접 언급한 기업은 삼성전자.

2년 전에 저장해둔 글

1) S전자가 온라인 판매를 본격화하지 못 하는 이유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글로벌 오프라인 유통망이 너무 heavy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의 비중이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자연스럽게 하락하기 전에는 S전자가 샤오미처럼 온라인에서 드라이브를 걸기는 어렵다. (샤오미에 대한 가치판단은 논외로 하자.)

2) 엔씨소프트가 모바일 비지니스를 본격화하지 못 하는 이유는, 리니지1의 유저층과 매출이 워낙 견고하기 때문이다. NC는 리니지1 IP로 모바일 게임을 만들 때, 게임성과 흥행성 뿐 아니라, 기존PC버젼에 대한 구축효과가 없도록 해야한다. 모바일이 너무 흥행해버리면, 혹은 모바일과 리니지1을 연동시켜버리고 밸런스에 문제가 생기면 모바일 리니지는 오히려 회사에 해를 끼치는 게임이 되어버린다.

지인은 엔씨의 이러한 현상을, 기존 제조업에서만 쓰일 법한 Legacy Cost라는 용어로 풀이했다. 한계비용이 없는 최첨단 비지니스에서도 기존의 것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다.

3) 국가적으로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은 Legacy Cost없이 완전히 깨끗한 상태에서 뜻을 모아 만들어나간 나라이다. 난 미국의 초강대국적 지위에 대해 1) 육로로 침략불가한 지리적 여건, 혹은 방관자적 여건 2) 막대한 자원 3) 완전히 새롭게 꾸려나간지 300년이 채 되지 않은 Fresh함 4) 새롭게 꾸릴 때 성공적인 민주주의-자본주의-개인주의 이념 정착시킨 것.  를 통해 가능했다고 간략하게 판단하는데, Legacy Cost가 없다고 표현하면 맞을 거 같다.

Legacy는 결국 언젠가는 버리고 처리하고 떨어내고 나가야할 것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legacy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기업의 현실 판단이 올바르고 냉정하다는 뜻도 된다. 우리는 쇠퇴해가는 기존 사업에 집착하다가 완전히 망해버리는 무수히 많은 기업을 목격했다. 앞으로 Legacy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하는 기업들과 그 사업군에 대해 좀더 의미있게 바라보면 재밌을거같다.


지금 시점에서 다시 돌이켜 보면

1) 당시 S전자를 위협하던 샤오미는 중국 내에서도 점유율을 잃어버렸고 Oppo니 Vivo니 하는 신생업체들과 화웨이라고 하는 전통의 강자 사이에 묻혀버렸다. 물론 샤오미의 청소기나 전동휠, 선풍기 등 훌륭한 제품들이 있긴 하지만 모바일 사업에서의 샤오미는 정점을 찍고 꺾여버렸다. 반면 S전자는 노트7이 폭발하기 전까지는 성공가도를 유지했다. 노트7이 성공했다면 지루해져버린 애플을 이겨낼 수 있었을 정도였겠지만, 노트7 없이도 그럭저럭 매출을 유지했을 만큼 하이엔드 시장의 탑2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그 사이에 유통망 구조가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았다. legacy가 cost가 아니라 지속적인 성공을 이어가는 주춧돌로 작용하고 있다.

2) 반대로 엔씨소프트는 Legacy를 지키지 못 하는 위협을 맞이하고 있다. Legacy cost로 인해 모바일 신작을 계속 딜레이 시키면서 매출을 유지해오는 전략을 취했는데, 이제는 정말 Legacy가 무너지고 있다. 아데나 가치가 폭락하고 집행검이 안 팔린다는 기사가 돌아다닌다. PC방에서의 게임시간 점유율도 줄어들었다. 거의 20년을 끌어온 리니지1의 '유산'이 무너지려는 위기 앞에 놓여있다.
그리고 리니지1 유저들을 데려간 것은 자사의 IP이지만 자사가 개발하지 않은 린2레볼루션이 었다. 충성고객들을 자사의 차기작으로 이어오던 엔씨의 신화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놓여있다. 리니지1이 굳건할 때의 엔씨에게 모바일 게임은 +@였지만, 리니지1이 무너진다면 엔씨에게 차기 모바일 신작 리니지M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절실한 게임이 되어간다.


3) 박근혜의 또다른 패악은, 시대가 필요로 하는 키워드들을 제시한 뒤에 이를 모두 똥통에 빠뜨려 버린 데에 있다. 노동개혁과 창조경제가 그것이다. 노동개혁에 덧붙였던 키워드는 3년의 희생으로 30년의 성장동력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3년의 희생을 설득할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 했기 때문에 이 나라는 30년의 각오를 해야할 지경에 이르렀다. 당분간 이 키워드들은 그 필요성과 절박함과는 별개로 박근혜의 유산으로 낙인찍혀 언급되지 조차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는 많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골든타임에 시도해 봐야 할 정책들은 수면 위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80만 공무원 양병설로 사회전체의 인센티브 구조를 나락으로 빠뜨리려는 후보의 대세설을 맞이하고 있다. 그는 정책적으로는 빵점이지만, 국민들은 정책적 검증을 할 시도를 하지 않는다.


내공빛난 바른정당, 수준높은 대화의 정석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F21&newsid=01485846615866928&DCD=A00602&OutLnkChk=Y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두 후보의 수준 높은 대화는 아무런 가치도 만들지 못 한다. 이런 수준높은 대화는 민주당 경선에서 이뤄졌어야만 했다.

민주당 경선이 마치 우리나라 양궁대표팀 선발식처럼 여겨지고 있다. 여기서 게임의 룰은 명확하다. 상대보다 높은 점수를 쏴야 한다. 상대선수를 쏴서 죽이는 방식은 룰을 깨는 것이다. 서로 계속 활을 쏘다가는 다른 후보가 어부지리로 부상할 수도 있다.
민주당이 쉬운 승리를 놓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올바른 정책으로 후보들이 과녁을 맞추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2017년 3월 18일 토요일

지극히 사적인 글

오래 만난 여자친구에게 권태기가 온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한두달간을 돌이켜보면 이미 행동으로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모르던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충격이 컸다. 나는 권태기라고 느낄 만한 감정적 변화가 없었기에.

처음에는 마치 지진과 같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진이 공포스러운 이유는 1) 내 삶을 지탱하는 땅이라는 근본 자체가 흔들리는 물리적 심리적 충격을 주는 사건인데다 2) 정확한 시점의 예측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대비가 불가능하고 3) 발생했을 시에 마땅한 대응방안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나는 한결같이 좋아해왔기 때문에 감정적인 대비가 불가능했다.
발생 초기에는 마땅한 대응 방안도 없었다. 나의 감정이 아니고 그녀의 감정이기 때문에.
내 삶을 온전히 의지하던 사람의 변화로, 내 삶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 있었다.

대략 2주간은 아무것도 할 수없어  방황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변화를 얘기하려면 그에 앞서 내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일이 있기 전부터 나는 막연히 내 삶을 이렇게 정의내리고 있었다.
내 삶을 구성하는 가변적인 축은 세 가지. 일, 게임, 그리고 여자친구.
(가족과 친구는 언제나 내편을 들어주는 상수이므로 논의에서 제외했다)

먼저 게임에 관해 말하자면, 난 대략 초등학교4학년 즈음 출시된 스타크래프트1을 시작으로 단 한번도 게임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고3때도 최소한 주간 단위로 한 번도 온라인게임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일을 시작하고 헤비한 게임을 할 시간이 없어지게 된 이후로는 오히려 매일매일 출석보상이 있고 라이트하게 즐기는 게임을 하게 되면서 주중이고 주말이고 출장을 가서도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스타1-워크3-카오스-WOW-LOL-하스스톤-풋볼데이-조조전 모바일-린2레볼루션
(그렇다 나는 블리자드 팬이다)

오버워치를 하기에는 내 손이 너무 느려졌고 패배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 MMORPG에서 WOW를 기대하는 나에게 린2레볼루션은 너무나 경쟁적인 게임이었다.
12월14일 린2레볼루션이 출시된 이후 나름 현질도 해가면서 만렙을 빨리 찍은 편이었으나, 만렙이 120에서 150으로 풀리자마자 나는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리고는 새로운 게임을 찾지 못 하게 되었다.
이렇게 정말 우연한 계기로 올해 1월, 나는 내 삶의 한축이라고 생각하던 게임을 놔버렸다.
게임은 '재미가 없어져서' 놔버렸기 때문에 정말 자연스러웠고, 아쉽지 않았다.
재미있는 게임이 불현듯 나타나면 게임은 다시 내 삶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 다음은 일이다.
사실 일이라고 딱딱하게 정의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일과 퇴근 후 삶이 전혀 분리되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고, 그래서 행복하다.
하지만 재미와 별개로 일의 성과가 Vol이 워낙 크다는 단점이 있다.
여자친구와 게임이 있을 때는 이 둘이 내 삶의 stability를 높여주고 일이 Vol을 주면서
우상향하는 인생의 싸이클을 그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1월에 게임을 그만한 와중에, 2월의 성과가 매우 좋지 않았다.
시장의 성격이 워낙 요상했기 때문으로 현재 시점에는 판명되고 있지만 2월 한달을 끊어놓고 보는 입장에서는 괴로움이 극에 달했다.

이런 와중에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지진처럼 흔들린 것이다.
내 인생의 축 세 가지가 동시에 망가져버린 2월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 일이 있고 나서야 깨달았다. 일과 게임과 여자친구가 3:3:3이 아니었고,
게임이 없어진 이후 일과 여자친구가 5:5의 factor가 아니었음을.
여자친구와의 관계정립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일은 전혀 손에 잡히지 않았다.
3가지 factor가 동등한 관계였다면, 한 축이 무너질 때 다른 축이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여자친구와 안 좋을 때 게임을 하면서 잊을 수 있어야 하고, 일을 더 열심히 하면서 더 나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못 했다. 여자친구는 다른걸 완전히 압도할 정도로 중요한 factor였다.



생각이 이렇게 정리되고 나니 나는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고민의 결론은 자존감이었다.

모든 것은 자존감의 문제로 귀결된다. 내가 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그녀의 남자친구로 나를 정의하는가 vs 내가 오롯이 있고 그녀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정의하는가. 나를 회사원으로 정의하는가 vs 내가 다니는 곳을 회사로 정의하는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안 좋을 때 집착하게 되고, 회사생활이 불안정할 때 사내정치와 아부를 하게 된다. 돌파구를 잘못된 방식으로 찾는 것이다.

나는 회사에 대해서는 철저히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이 회사가 아니어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오만에 가까운 생각이 있었고, 입사 후 지속적으로 회사욕을 하면서 다니고 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절이 다니기 싫을 정도로 싫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절이 쫓아내면 툴툴 털고 미련없이 나갈 수 있는 중의 자세로 사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선 그러지 못 했다.
흔히 말하는 밀당이 없었다. 재고 따지지 않고 다주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그러고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 협상할 필요가 없다면, 양측 모두 협상력을 무기로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나의 행복도는 여자친구의 감정에 매우 탄력적'이었다. 양측이 서로를 많이 사랑하고 있을 때에는 나의 행복도 curve가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없었다. Dynamics가 있기 전에는 static model이기 때문에 나는 curve가 아닌 '매우 높은 수준의 행복도'라는 한 점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런데 여자친구의 감정곡선이 이동하면서, 나의 curve와 만나는 점이 변해버렸다. 그제서야 드러난 나의 행복도 곡선은 매우 탄력적이었고, 나는 감정적으로 무너졌다.

내 행복도 곡선이 이렇게 탄력적인 것도 결국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매달렸기 때문이었고, 권태기라는 이야기를 접한 초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바꾸어 생각해보자. 권태기라는 것은,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감정곡선을 단순히 이동시켰을 뿐 아니라 '나의 사랑에 대한 본인의 행복도 곡선을 비탄력적'인 모양으로 변경한 것이다. 커브를 세워버린 것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여자친구의 감정변화는 크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집착할수록 역효과가 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여자친구의 자존감은 과거 몇달간 높아져왔다)

여자친구의 감정곡선은 내가 바꿀 수 없는 외부변수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나의 여자친구에 대한 감정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정적인 측면에서는 여자친구의 나에 대한 감정이 돌아온다면 과거와 같은 지점에서 만날 것이다. 나의 행복도와 여자친구의 행복도가 과거와 같은 곳에 찍힐 것이다.
내가 바꾸려고 하는 것은 dynamics다.
커브를 세우는 것이다.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다.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내가 전혀 알지 못 한다. 끊임없이 마음수양을 하고, 집착하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이번 사태의 해결책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나의 자존감은 상당히 높아졌다. 그리고 좀더 다행스럽게도, 경제적으로는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존감이 최악까지 무너지는 경험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마음의 변화만으로도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운동을 시작했다. 시간이 남기도 했고, 번잡한 생각을 그만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나의 자존감을 높이는 동시에, 나의 노력이 여자친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측면도 있다.

자존감을 높이는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중이고, 여자친구를 기다리는 중이다. 아직 진행 중이다.

2015년 2월 15일 일요일

서평

최근 읽은 세 권의 책 『21세기 자본』『빚으로 지은 집』『저주의 몫』에 대해 짧게 글을 쓰려 한다. 너무나 논쟁적인 책이 껴있는 관계로, 개인적인 느낌 위주로 정리한다.

1. Smaller than Marx 『21세기 자본』

먼저 『21세기 자본』(Capital In 21 century: 토마 피케티)에 관한 이야기다.
금융위기 이후의 저성장, 그에 이어지는 불평등의 심화라는 글로벌한 경제환경에서 토마 피케티가 던지는 아이디어는 명쾌하다. r>g, 즉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f(자본,노동))성장률보다 높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더 부유해지고 노동자들은 더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r>g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그가 생각하는 이유는 인구의 성장과 혁신이 모두 둔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쾌한 아이디어를 15년간 모은 방대한 데이터로 뒷받침하는 만큼 분명 경제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책이다. 그러나 로렌스 서머스의 서평처럼, 그는 "완벽한 순간에" 불평등을 다뤘다. 탐욕적인 자본가 집단으로 각인되어 있는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가 휘몰아친 이후, 글로벌 저성장이 대부분의 경제주체를 짓누르고 있는 2010년대에 출판된 이 책의 이슈성은 다소 과장된 듯한 느낌이 든다.

이코노미스트 지는 이 책에 대해 "Bigger than Marx" 라고 극찬했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Capital이라는 책 제목이나, 책 내용에서 마르크스의 연구들을 언급한 저자의 의도적인 부분 때문에 저런 평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이해한 마르크스의 문제인식은 생산수단의 박탈이었고, 그의 대안은 생산수단의 공동소유였다. 이는 분명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매력적인 대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실험적 체제를 가진 국가들이 건설되었고, 비록 실패했지만 꽤나 오래 존속했다. About what? what to be? How to? 가 모두 갖춰진 잘 짜여진 이론이었다.

피케티의 문제의식은 '상대적으로 높은 자본의 수익률 때문에 생기는 불평등의 심화' 였고, 자연스럽게 To be는 불평등의 완화이다. 그가 제시한 how?는 자본세의 부과를 통해 자본의 상대적 수익률을 낮추자는 것이다. 그가 포괄한 '자본'의 구성체들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비판 등 여러가지 통계학적 비판은 차치하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렇다.

현재 불평등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은 궁극적으로 '불평등의 완화'를 꿈꾸는가, 아니면 '내가 저 자본가가 되고 싶다'를 꿈꾸는가? 우리는 '위에 있는 사람들이 미끄럼틀을 타고 주르르 내려오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사다리'를 원하는가? 최소한 나는,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후자를 원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불만을 가지고 있는 계층에게 피케티의 대안은 마르크스의 그것보다 훨씬 덜 매력적이다. 물론 피케티 스스로가 본인은 경제학자라기보다는 사회과학자로 정의하고 있는 만큼, 그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더 힘을 썼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너무나도 논쟁적인 결론파트를 두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우스울 수도 있지만, 아직은 Smaller than Marx다.


2. 어떤 자본이 문제가 되는가? 『빚으로 지은 집』

『21세기 자본』은 방대한 자료에 걸맞게 거대담론을 다루고 있는 만큼, 자본 전체를 뭉뚱그려 이슈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반면『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은 좀더 쪼개서 현실성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다다음 단락부터 이야기하겠다. 책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저자들의 문제의식은 과도한 가계부채와 이로 인한 과도한 Boom-bust Cycle의 진폭이다. 지나치게 쉽게 돈을 빌려주는 사회분위기로 흐르게 되어 가계부채가 과다해지면 버블이 형성되고, 언젠가 뻥 터진다는 것이다.

House of cards를 패러디한 듯한 제목을 가진 이 책도 최신 통계를 이용해 문제에 접근한다. 저자들은 대공황과 대침체 (1929, 2008) 직전에 모두 과도한 신용승수와 이로 인해 가계부채가 지나치게 높은 수준까지 올라갔다는 점, 그리고 Bust가 일어나기 전에 Durable Goods에 대한 소비가 크게 감소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내구재의 특성상 가격이 비싸고, 레버리지를 일으켜서 살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들이 유의미한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쉽게 할 수 있는 '빚은 위험해' 에서 한 단계 나아가 내구재 소비에 관한 통계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게 이 책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매우 탁월하다. 먼저, 사람들이 내구재를 소비할 때 레버리지를 일으킨다면, 그 사람들을 채무자, 레버리지를 제공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채권자 혹은 자본가로 분류한다. 그리고 레버리지로 인해 경제의 Volatility가 커지고, Bust할 때 지나치게 힘든 시기를 겪어야하므로 과도한 레버리지는 좋지 않다는, 받아들이기 쉬운 명제를 바탕으로 한다. 지양해야할 과도한 레버리지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 책의 결론은 레버리지를 쓴 채무자와 레버리지를 제공한 자본가 모두에게 Leveraging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논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레버리징에 대한 주된 비판은 채무자 측에 집중된다. "왜 소득수준에 맞지 않는 무리한 소비를 했는가?" 라는 식의 비판을 한 번쯤은 접해봤을 것이다. 비판 뿐만 아니라 책임소재도 모두 채무자가 지고 있다. 20%의 자본과 80%의 레버리징을 통해 집을 샀는데, 집값이 20%빠지면 채무자의 자산은 0이 되고 채권자의 자본은 온전히 보존된다.

그러나 채무자들이 강제적으로 Deleverage 되는 과정에서, 채권자들 역시 고용 혹은 임금의 감소 -> 소비 감소 -> 성장률 둔화라는 고리를 통해 일정부분 경제적 어려움을 입게 된다. (책에서는 'Levered Loss'라는 핵심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즉, 채권자들 역시 과도한 레버리지에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공동의 피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책의 뒷면에 써있는 "우리는 한 배에 타고 있다" 라는 한 문장이 사실은 이 책의 핵심이다.

『21세기 자본』에서의 노동자와 대척점에 있는 자본가가 아닌, 레버리지를 제공한 자본가로 접근하는 순간 좀더 명확한 논의가 가능해진다. 레버리징에 일조했음에도 책임은 지지않는 '무책임한 자본'이 문제의 대상이 된다. 무책임한 자본은,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고정된 수익률을 원하는 Fixed Income을 뜻하고, 책임지는 자본은 손익을 공유하는 주식형태의 자본이다. 저자는 채권형 자본이 줄어들고 주식형 자본이 늘어나는 것이 바람직하고, 현실적으로 손익공유형 모기지가 더 늘어나야한다고 대안을 제시한다. 자본세를 거두어 국가의 실패가 발생하지 않는, 극히 미미한 확률에 기대는 것보다는, 책임지는 자본이 증가해야한다는 논리가 나에게는 더 편안하다.

3. 프랑스 저자들?

전혀 모르는 분야이니 짧게 느낌만 쓰자면, 피케티의 책과『저주의 몫』(조르지 바타이유)에서 두 가지 공통적인 느낌을 받았다. 첫 째는 '전쟁'의 소모성에 대해 꽤 중요하게 언급한 것이다. 피케티는 불평등이 줄어들었던 시기로로, 바타이유는 넘치는 잉여의 파괴적인 소모방식으로 언급했고, 결국 사회가 이런식으로 가다간 또 전쟁이 일어난다는 트라우마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한발짝 떨어져 승자가 된 미국인들의 책에서는 크게 강조되지 않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프랑스와 미국은 뇌구조 자체가 다르다.

두 번째는 분배와 평등, 소비에 대한 일관된 프랑스식 철학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타이유는 차별없는 풍요사회를 꿈꾸며,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증여'지만 현대사회는 증여를 할 만큼 지혜롭지 않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미국의 마샬플랜을 유럽에 대한 '증여'로 해석하며 긍정적으로 보았다는 점은 특이하다. 피케티의 자본세도 궁극적으론 그런 방향성을 꿈꾸는 게 아닐까. 기회가 되면 보들레야르의 소비에 대해서도 공부해보면 좋겠다.


논외로... 피케티는 대중에게 쉽게 읽히게 하기 위해 문학을 많이 인용했는데, 책을 지루하게 하는 요소가 된거 같다. 피케티의 문체도 쉽게 읽히지 않는 문체였다.

책과 함께 피케티가 한국에서 강연한 DVD가 왔는데, 강연후 대학생의 첫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피케티 교수님은 젊었을 때 힘든 점이 뭐였는지, 어떻게 극복하셨는지?"..힐링 불쉿은 이제 제발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다행히 피케티는 원하던 답을 주지 않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돈 걱정 없이 잘 살았습니다.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 2월 1일 일요일

지주사 투자에 대해

주식시장이 제자리에 머문지 7년째가 되었다. (나라의 경제력과 위상은 제자리도 유지하지 못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커지지 않는 파이를 어떻게 나눠먹어볼까 하는 순환매가 이루어진다. 이에 주기적으로 투자Theme을 가지고 특정 주식들을 올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성장주에 대한 고밸류에이션은 지속적인 현상이고, 흔히 말하는 가치투자의 트렌드는 최근 몇년간 자산주 -> 배당주 -> 지주사 로 옮겨가는 듯 하다.

지배구조, 즉 승계이슈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부각되는 독특한 현상이다. 유례없이 급격하고 빠른 성장으로 인해 축적된, 그리고 다음 세대에 넘겨줘야할 부가 특정 세대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자산가 입장에서도, 국가 입장에서도 상속에 대한 정책이 골머리다. 최고상속세율이 50%로 세계 최고 수준인데, 미국이 35-40%인 걸 비롯해 OECD 평균이 25%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래퍼곡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50%를 고분고분낼 사람이 없다는 건 상식이고, 실제로도 상속을 적법하게 하는 기업인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세율에 비해 턱없이 덜 걷히는 편이고, 여전히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적당히 내고 넘어가자, 보다는 어떻게든 아예 안 내겠다는 쪽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70%를 제시하는 피케티는 지나친 이상주의자다.)

승계를 하는 데에는 역사적으로 여러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법적인 헛점을 이용한 CB발행,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분할합병을 통한 자산헐값 인수 등이 대표적이다. 한발씩 늦긴 했지만 이에 대한 대책으로 각종 법안들이 나왔고 이제는 합법적인 승계방식이 몇가지 남지 않았다. 정부에서 원하는 방식이 바로 순환출자를 제거하고 지주사-자회사 방식으로 그룹 지배구조를 바꾸라는 것이다. 깔끔한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기업의 속사정을 더 쉽게 들여다보고 세금을 매기기 쉽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골머리를 앓던 승계 문제에 있어 한 쪽 구멍을 터준 모양새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한 회사를 지주사-사업회사로 쪼개고 지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사업회사의 가치를 올린 후 지분을 스왑한다. 그럼 단순히 회사를 쪼갠 효과로 대주주는 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거의 2배 혹은 그 이상으로 올릴 수 있다. (지주사 전환은 다소 복잡하므로 그 과정은 이 글에서 서술하지 않겠다.) 중요한 부분은 "사업회사의 가치를 올리고", 정확히는 "올리고"라는 파트이다. 올린다의 주체는 누구일까? 바로 대주주다. 한정된 기업의 이익을 가지고 조물락조물락 이 회사에 붙였다 저 회사에 붙였다 하면서 기업의 가치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주체이다. 바로 이 포인트가 최근에 유행하는 지배구조 테마이다. 한정된 이익을 어떤 회사에 붙여줄지에 대한 관심이다. 말은 지배구조이지만 본질은 이익Growth에 대한 목마름이며, 좀더 큰 조각으로 (대주주가) 잘라줄 파이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식시장의 측면에서는 정말 웃지 못 할 이야기들이 나온다. '지금 대주주는 승계 전까지는 이 회사 주가를 띄울 의지가 없어' 아니 대체 전세계에서 어떤 기업인이 자신의 회사가 잘 되지 않기를 의도할까? 심지어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JY승계 전에는 이익을 많이 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대세를 이룰 정도로 한국 주식시장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독특하고 슬픈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유명한 투자자들의 대응방식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결과적으로 재벌들의 배를 불려주는 게임에 참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VIP 최준철 대표의 칼럼으로 대체한다. 두번째는 적극적으로 지배구조의 변화에 주주로서 목소리 내겠다는 것이다. 2006년 출시되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장하성펀드, 이원일 前 알리안츠 대표의 지배구조 개선펀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건희씨가 7%의 전자 지분으로 삼성그룹을 어쩌구..하는 모든 이슈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움직임이다. 재벌구조에서 개인주주들의 주주권은 0에 수렴하고 있고, 이는 정상적인 주식회사의 의결구조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지막 가장 안 좋은 케이스는 이익Growth가 나니 그 이윤을 향유하겠다는 쪽이다. 펀드는 돈만 벌어다주면 된다는, 어쩌면 원초적 목적에 부합하지만 한편으론 철학이나 문제의식이 없는 부류이다. 아마 대다수의 주식시장 참여자가 이에 해당할 것으로 판단되고, 제일모직과 글로비스와 SK C&C 주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좋은 말로 포장하려고 하는 자들의 항변은 주로 이렇다. "기업의 주인이 되는 마음으로 주식을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주주와 한 배를 타는 것이 유리하지 않겠는가" "지주사의 주식을 가지면 그 그룹 전체를 사는 것과 같은 효과다. 얼마나 저평가되어 있는가"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대주주 7%의 의결권이 100에 근접하고, 소수주주들의 의결권은 0에 수렴하는 구조이다. 지주사 주식을 개인 혹은 펀드가 혹여 1%이상 가져본들 그 지분의 의결권은 그룹의 의사결정에 털끝만큼도 영향을 미치지 못 한다. 지주사 주식을 사면서 의결권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매우 비겁하다. 차라리 솔직하게 주가가 오를 것 같아서 샀다고 하면 자본시장의 제1원칙인 수익성의 관점에서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지주사테마에 편승하여 수익을 내보겠다는 마인드를 부끄러워 하면서 억지변명을 하는 투자자들은 철학도 원칙도 없는 투자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15년 1월 15일 목요일

재시작

연말연초 한달 간 퍼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관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애초에 게으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기적으로 이렇게 쉬고 다시 motivation을 찾는 작업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보단 좀더 놀았지만 이제 마음을 다잡고 재시작.

1) 데니스 홍
 최근에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교수의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대가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머리를 탁 때리는 듯한 충격을 줄 만큼 그는 대단한 강연자였다. (이미 TED에서도 두 차례 했었고, 찾아보니 컨퍼런스 강연이나 인터뷰 등은 꽤 많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그의 열정과 삶의 태도였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이 갖추고 있는 덕목이긴 하지만, 그는 훌륭한 강연자로서 자신의 열정과 긍정을 청중들에게 잘 전달해줬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가 만든 기술이 도움이 된다는 생각하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고 즐거운 일이다. 인류에 대해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어서 정말 뿌듯하다"고 말하는 그는 정말 행복해보였다. (실제로 TED에 나와있는 그의 Biography summary에는 he has pioneered several breakthroughs in robot design and engineering 라고 나와있다. Breakthrough는 언제나 중요하다)

직업을 가지면서 사회적 기여에 대해 이미 많이 고민했고 앞으로도 고민해야겠지만, 이미 소결론은 부정적인 쪽으로 나있다. 이에 대해 전혀 부끄럽거나 하지 않지만, 여전히 "인류에 대한 기여"를 논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동경할 수 밖에 없다. 이 와중에, 강연 후 나오는 길에 던진 증권사 직원의 한 마디가 잊혀지질 않는다. "참 좋은 강연인데..주식 종목 아이디어가 없어서 좀 그랬죠?" 한심하다. 저런 분을 모셔놓고 종목을 묻는 건 "오만"이라고 대꾸했다. (그는 "투자자"들을 위한 강연이라고 해서 특별히 구글이 현재 로봇회사들을 많이 M&A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감히 "인류"라는 단어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그가 미국에 살기 때문이 아닐까. 나쁘게 보면 미국 영화들에 역력히 묻어나는 "인류를 구원할 영웅주의"겠지만, 미국이라는 인프라는 인류를 언급할 만큼 충분히 훌륭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참고로 그의 제자 한재권씨가 예능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뛰어난 로봇연구소의 일원이었던 그지만, 우리나라에서 그의 이미지는 '예능에 출연한 GEEK' 정도가 아닐까.

그를 대중들에게 유명하게 만든 TED강연: Making a car for blind drivers


2) 로봇
데니스 홍의 강연 중,  RoboCup이라는 로봇 축구대회의 우승자가 일본의 독식 > 독일2회 -> 현재 미국 4연승 중이라고 한다. 아마 로봇산업의 헤게모니도 이와 비슷하게 흘러갔을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국의 강점은, 당장의 Output이 아니라 기반기술들을  착실히 다져나가다가 필요한 순간에 이를 폭발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완전히 동의한다.

반면 그는 국내 로봇 수준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한국 로봇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 뛰어난 인재도 많고 정부 지원도 있는데, 그 방식이 한참 잘못 됐다는 것. 정부는 "몇 년 안에 어떤 걸 만들어오라" 라고 이야기하고, 그것이 달성되어야만 다음 지원금이 나간단다. 그러다보니 이것저것 해보다 안 되면 미국,일본,유럽의 기술을 짜깁기 해 결과물'만' 내놓는 행태가 반복되는 것이다. 여전히 Fast Follower 전략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기술은 생각보다 어렵고 삽질할 시간이 필요하다. 데니스홍 교수의 휴머노이드 로봇도 20미터를 전진하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에 3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우리나라에게는 진정 삽질할 여유가 없는 것일까. 언제쯤 여유가 생길까.


강연 호스트가 물었다. "로봇 산업에서 가장 난제를 겪고 있는, Breakthrough가 필요한 기술은 무엇인가?"
A. 음...로봇기술은 아닌데, 배터리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배터리가 아닌  전혀 새로운 Breakthrough가 필요하다
모든 IT와 첨단기술은 배터리로 귀결되는 모양이다.


3) 헬스밴드(Fitness Tracker)  vs 스마트워치
이번 CES의 화두는 Wearable과 IoT, IT for Auto 정도였다. TV부문은 New but Nothing attractive (QD와 OLED 경쟁)가 일반적인 평이다.

IT기기는 '쿨'한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뷰포인트를 준 사람이 건낸 아이디어. 사람들은 Wearable기기라는 게 티나면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몸에 차고 있던 것들의 Form Factor에서 벗어나지 않되, 기능이 WoW해야한다는 것.
그가 제시한 포인트는 시계와 글라스였다. 갤럭기 기어가 참패하고 애플워치가 성공이 예상되듯이, 스마트워치의 포지셔닝은 Little Smartphone이 아니라 Functional Watch여야한다. 글라스도 마찬가지로 구글글라스처럼 현재 안경과는 확연히 다른 폼팩터를 지닌 상태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뷰. 글라스는 아직 시장이 열리기엔 시기상조.

단기적으로 Wearable에서 고민해야할 포인트는 헬스밴드 vs 스마트워치로 보인다. Activity Checker 수준의 역할을 맞고 있는 헬스밴드냐, 다기능성의 스마트워치냐의 문젠데 역시 핵심은 배터리 이슈다. 소비자들이 웨어러블 기기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일까? 무신경하게 언제든 찰 수 있는, 그러나 기능은 별로 없는 밴드인지, 이틀에 한 번 충전해야 하는 다기능성 시계인지 아직 고민해야할 부분으로 보인다.
 (Fitbit의 밴드. 쿨하다)
 
Fitbit 창업자 인터뷰 - 왜 스마트워치를 하지 않는가 - 소비자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James Park라는 이름이나, 생김새나 재미교포로 보인다)
 
 
스마트워치는 결국 - 기존 시계만큼 예뻐야 하고 - Health Band를 이겨낼 만큼 기능적이어야 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라면, 나는 차라리 Health Band를 살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번 유가 하락을 가장 명료하게 정리한 글.
“It’s a turning point in the way people perceive OPEC, that this so-called cartel is not really driving prices,” said Jeff Colgan, a professor at Brown University’s Wat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Studies who researches the geopolitics of energy. “The real story is going to be about the fracking industry. How much pain can North American producers take?”